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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남한산성> 시놉시스

2. <남한산성> 줄거리

3. <남한산성> 관전평

 

 

 

1. <남한산성> 시놉시스

1636년 인조 14년. 청군이 공격하자 왕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는다. 추위와 배고픔, 절대적 군사적 열세 속에 청군에게 철저히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대신들의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순간의 굴욕을 참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최명길(이병헌)과 청와대의 치욕적인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하며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김상헌(김윤석)의 말이다. 이런 가운데 '예술가'(박해일)의 고민은 깊어지고, 청 정부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진다... 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된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혀 있다!

 

 

2. <남한산성> 줄거리

청의 공세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고뇌한다. 첫 번째는 점차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는 청나라에 항복하여 이조판서의 최명길(이병헌)의 생각처럼 군사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른 의견은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바람처럼 명나라의 계속되는 명분을 지키고 청나라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본다. 분명 김상헌의 명분은 조선 건국의 기본이지만 청나라의 군사력과 조선의 현 상황은 당분간 버틸 힘이 없어 보인다.

 

인조 14년 병자호란 당시의 날씨는 지독히 추웠다고 기록에 적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청나라 군대에 의해 성벽을 지키던 군사들은 동상에 시달린다. 더욱이 고립된 성곽의 특성상 식량 조달의 문제가 대두되어 남한산성의 모든 백성들은 기근을 피할 수 없다. 최명길은 조선과의 합리적인 접점을 찾기 위해 청의 장수 용골대(허성태)를 여러 번 찾지만, 청은 군사적 관계를 포함한 조선의 세자를 청에 이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자를 볼모로 잡고 조선을 더 묶어두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인조와 중앙 관리들은 명길의 충성심마저 의심하게 된다. 청의 기세에 대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명길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고, 인조마저 군사적 우위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투마다 패배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조는 더 이상 청과 대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명길은 다시 용골대를 찾아 세자의 헌장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묻지만, 용골대는 명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조선의 근본적인 태도와 명과 함께 말한다. 일련의 청의 입장을 들은 상헌은 성 밖에서 대군을 규합해 청의 군대를 소탕한 도청장에게 난폭한 편지를 보내고, 보내는 전령들마다 청의 조직된 인원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결국 남한산성의 지형을 알려준 대장부의 날림쇠(고수)를 도청장에게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다만 날림쇠의 혹독한 편지를 받고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과 마주하는 것은 도청의 수장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날림쇠가 보낸 편지의 진위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날림쇠를 제거하고 날림쇠에 손이 닿지 않은 척하려 든다. 그러나 눈치 빠른 사나이는 도총관 부하들의 공세를 피해 다시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약속한 보름이 지나도 봉수가 점화되지 않자 상헌은 전달하기로 한 편지에 완전히 닿지 않았다. 나아가 신년에 명을 받드는 인조의 모습이 관찰되자 조선에 도착한 칸은 남한산성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명한다. 결국 인조는 청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백성들은 이를 빌었다 밭을 구할 길이 없고, 명길이 청에게 이른바 항복을 전하게 한다. 청나라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

 

흔히 삼결고두로 불리는 청태종에게 예를 들라고 지시한 인조가 왕으로서 잔인할 정도로 처벌을 받기를 기대한다. 명길은 청을 경배하는 성주의 모습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청과의 벗이 되기를 거부한 강헌은 목숨을 끊고 자신의 부재를 죽음으로 보답하려 한다. 인조는 폐허가 된 창덕궁으로 돌아가고, 최명길의 시선은 어딘가에 멈춰 서 슬픈 눈빛을 이어간다. 영화 말미에 병자호란이라는 문구는 개전 47일 만에 막을 내렸고, 50만 명의 조선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3. <남한산성> 감상평

극 중 남한산성은 마치 조선의 슬픈 단면처럼 느껴진다. 청나라의 군사력 수준이나 무기를 인식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진입한 남한산성은 외부의 적이 아닌 스스로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열악한 무기는 상대하기에 약한 것 같고, 부실한 식량으로 병사들의 사기는 날로 저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악천후는 성 안의 백성들을 더욱 정서적으로 고립시키고, 일련의 태도는 모두 조선이 질서와 군신의 관계에 매몰되어 청의 성장으로 국제정세를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 해당한다.

 

인조의 부하 관료들 중 남한산성의 견고한 성벽을 신뢰하고 있어 곧 청의 공세가 무력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질서를 견고한 성벽으로 오인하던 당시의 상황과 비교하여 판단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명과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조선의 상황을 청은 상당히 불안하게 판단하고 있어 명을 넘어 청의 세력을 이 지역에 알리려는 야심으로 해석된다.

 

다만 김상헌을 필두로 한 척화파는 여전히 명과 청의 압력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것으로 믿고 있으며, 명과 청의 구분 이전에 애당초 오랑캐라고 불리던 이들과의 연대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의 천민이었던 정명수(조우진)가 청으로 유입되어 용골대에 대한 통역이나 전략을 담당하는 인물로 변용되었다는 점이다.

 

정명수는 조선의 사신 명길에게 조선의 신분제의 한계를 지적한 적이 있다. 천민들이 사회적 위계를 올릴 가능성에는 불가항력의 의미가 포함된다. 여기서 관객은 조선이 신분제를 포함한 명분 아래 고른 사회제도를 변화시킬 근거가 없음을 알게 된다. 더욱이 남한산성에서는 여전히 명분과 질서의 군사적 관계를 강조하는 문단의 이야기가 주로 반응하고 있다.

 

김상헌이 그림을 고집하지만 그의 충절은 이미 작품 초반에 나타난다. 남한산성 길에서 얼어 붙은 강을 건너는 김상헌과 노인 사회복지사. 오랑캐의 품만 내어주면 길을 인도하고 일정한 이익을 갈망하는 노인이 앞장선다. 김상헌은 어린 손녀와 단둘이 사는 사공의 이야기에 공감했지만, 무엇보다 사공이 청에게 길을 제공한 것은 인공이나 조선의 위기로 해석된다.

 

결국 김상헌은 노인을 베어버리고 수로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오는 청을 막는다. 이후 할아버지를 찾아 성을 찾은 어린 소녀 나루. 나루는 다름 아닌 노인 사회복지사의 손녀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상헌이 나루를 맡았다. <남한산성>의 작업 전반에 걸쳐 상헌으로 가는 뱃사공과 나룻배 연결되는 이야기는 죄의식에 앞서 나타난다. 그러나 임금을 아끼고 나라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사적 행위에는 아무런 장벽이 없다.

 

인재를 상대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명분이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공리적으로 선택한 일은 대의를 수호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루와 마주하는 순간 상헌은 고민에 빠진다. 대의를 위해 행해진 행위의 결과가 모두 인간의 심연에 있는 양심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양식은 자신과 대립하는 명길에게 응수하는 상헌의 태도일 것이다.

 

상헌과 명길은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충성이나 나라의 안위를 위해 자신들의 신념을 밀어붙인다. 어쩌면 이들의 정쟁 과정은 얼핏 보면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이전에 조선을 이롭게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전제를 인정한다. 영화의 말미, 청의 압박이 극에 달하면서 인조는 그가 유일한 머리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청에게 항복하는 과정은 인조를 포함한 조선의 가장 굴욕적인 문단 중 하나이며, 곧 상헌은 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자결로 사죄하려는 명분으로 보인다. 동전화가 최명길은 상헌의 명분과 부합하는 실리를 가지고 있다.

 

부자의 명분을 질서와 조선에서 찾으려는 상헌의 변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의 백성을 살리는 일이다. 여기서 상헌은 인조의 역할을 지키기 위한 조정과 종묘의 명분 쌓기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에 명길의 경우에는 인조의 안위와 함께 성내 백성의 안위를 우선시하려는 생각이 다소 진보적이다. 용골대를 찾아 협상을 계속하는 과정에서도 인조와 일부 관리들은 세자가 청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극도로 싫어한다.

 

다만 명길은 세자가 백성을 안위하게 할 수 있다면 조정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더욱이 청의 공세가 치명적으로 이루어지자 명길은 백성의 안위를 위해 청과 함께 수직적 위계질서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다른 관리들은 명길을 역적으로 폄훼하는데, 이는 명과의 관계가 조정의 명분인 인조의 입장에서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길은 남한산성 김상헌만이 유일한 진정한 충신이라고 표현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상헌의 태도가 과거 조선의 입장이고, 역사의 우여곡절을 제대로 인정한 것도 최명길이기 때문이다. 상헌은 관직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타도하기 위해 도수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명길은 청과의 화진 바깥에서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 일련의 사고는 관직의 규모와 실제 권력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한 명길의 눈과 통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들어서자 날쇠라는 인물을 도수의 부대장으로 옮겨 정열의 편지를 전하는 상헌의 태도는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도청 수장조차 청의 군대 규모에 기겁하고 상헌은 인조의 입장처럼 여전히 청을 부랑자로 업었다는 태도와 무지를 드러낸다. 진취적 이념에서 모든 해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병자호란과 관련된 우리의 침해사에 여전히 존재하는 조선의 오류는 현실 판단과 함께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길도 상헌도 조선을 자신의 의지로 최선의 선택에 이르지 못한 패자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인조의 자주적 선택 불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생존하는 방식에 대한 무한한 숙제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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